“한국 경쟁력 높은 반도체·자동차 등에 기술 특화땐 ‘AI 글로 벌 톱3’ 가능” (2024. 05. 20)
서영주 포항공대 AI 대학원 및 AI 연구원 원장이 지난 9일 서울 중구 문화일보 사옥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글로벌 AI 산업의 발전 방향과 한국의 대응 전략을 설명하고 있다. 윤성호 기자
■ 현안 인터뷰 – 국내 AI 전문가 서영주 포항공대 인공지능연구원장
美·中, 데이터양 많아 1·2위
우린 특화기술 키워 점프해야
AI솔루션 수출 선진국 될 것
지금은 초창기라 폭발적 발전
일정수준 되면 ‘AI=기초학문’
자동차에 가속·제동 페달 있듯
AI도 ‘브레이크’ 만들어야 공존
내달 문화산업포럼 좌장 맡아
‘인공지능시대 미래 비전’ 제시
2016년 바둑을 두는 인공지능(AI) ‘알파고’가 촉발한 AI 열풍이 최근 ‘챗GPT’의 등장으로 이어지며 인류가 혁명에 가까운 기술 진보를 거듭하고 있다. 인간을 보조하는 똑똑한 기계 정도로 여겨졌던 AI 기술이 이제는 창작의 영역에 진입하면서 AI 분야는 전 세계의 자금과 인재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인 마켓앤마켓은 글로벌 AI 시장 규모가 지난해 1502억 달러(약 204조 원)에서 2030년 1조3452억 달러(1825조 원)로 약 9배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후학 양성과 기술 개발을 병행하며 국내 AI 분야 최고 전문가로 불리는 서영주(62) 포항공대 AI 대학원 및 AI 연구원 원장은 AI가 마치 언어나 수학처럼 우리 일상에 녹아드는 기술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한국도 강점을 가진 산업 분야에서 AI를 활용해 기술 우위를 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 원장은 “한국처럼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기술력을 모두 겸비한 나라는 드물다”며 “우리는 반도체·전자·자동차·조선 등의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고, 해당 분야에서 AI 특화 기술을 개발해 점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가진 글로벌 기업과의 경쟁은 갈수록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고 전망하며 “산유국이 아닌 한국이 기름을 수출하듯 데이터 분석 기술 분야를 잘 키운다면 관련 솔루션을 수출하는 AI 선진국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 달 4일 열리는 문화산업포럼 1세션 좌장을 맡는 서 원장을 지난 9일 서울 중구 문화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AI 패권 전쟁’이라고 불릴 만큼 각국의 경쟁이 치열하다. AI 붐은 언제까지 지속할 것으로 보나.
“AI는 한 번 스쳐 가는 정도의 기술이 아닌 마치 언어나 수학처럼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될 것이다. AI란 쉽게 말해 데이터로부터 유의미한 정보를 끄집어내는 것인데, 우리 인류는 앞으로도 데이터를 계속 생산할 것이고 자연스레 AI 기술도 진화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AI 기술 초창기라서 폭발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지만 이후 일정 수준이 되면 AI도 기초학문처럼 여겨질 것이다.”
―현재 한국의 AI 기술력은 어느 수준까지 올라와 있나.
“다양한 기준이 있지만, 객관적으로 따져봤을 때 우리나라가 AI 분야 세계 톱 랭킹 수준은 아니다. 한편으론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미국의 대학들은 이미 20여 년 전부터 머신러닝 관련 학과를 개설하는 등 오랜 시간 인재를 양성해 왔다. 우리나라는 AI 연구에 뛰어든 기간이 길지 않기 때문에 단기간에 AI 선진국 대열에 올라서는 건 기대하기 어렵다.”
―AI 기술 경쟁에 있어 가장 큰 장벽은 무엇인가.
“AI는 결국 데이터양에서 경쟁력이 나뉜다. 현재 구글이 AI 분야 강자인 이유는 그동안 검색엔진을 통해 쌓은 데이터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도 국산 검색엔진이 있지만 확보한 데이터의 양에서 구글 등과는 차이가 난다. 중국은 해외유학 등을 장려하며 일찌감치 인재를 키운 데다 공산주의라는 특징까지 합쳐져서 현재 엄청난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AI 경쟁력을 확보할 방안이 있다면.
“제일 중요한 건 인재다. 특히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는 정말 뛰어난 인재들이 등장해 기술을 이끌어 주는 게 중요하다. 다행인 건 우리나라는 똑똑한 인재들이 많고, 산업 측면에서도 한발 늦었지만 앞선 기술을 따라잡아 추월하는 걸 정말 잘한다. 포항공대 AI 대학원이 만들어지기 전인 5년 전과 지금을 비교해봐도 논문 수준 등에서 상당한 발전을 이뤘다.”
―많은 인재가 의대로 쏠리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과거 산업화 시대에는 정부 차원에서 이공계에 많은 혜택을 제공하면서 인재들이 공대를 선호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에는 의대로 인재들이 쏠리면서 국가 차원에서는 슬픈 현실이 지속되고 있다. 이 문제를 자연적으로 해소할 방안은 없고 결국 정부와 기업들이 나서야 한다. 정부는 이공계 핵심 분야 인재들에게 국가장학금을 지원하고, 기업들은 단순히 대학을 졸업하는 학생들을 뽑을 생각만 하지 말고 장기적인 투자를 할 필요가 있다. 현재 미국과 중국이 AI 분야 ‘톱2’라고 하면, 우리가 인재 육성 분야에서 더 많은 노력을 했을 때 적어도 3위까지는 갈 수 있다고 본다.”
―우리나라가 잘할 수 있는 AI 분야가 있다면.
“AI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AI를 활용하지 않으면 더는 생존이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우리나라는 반도체·전자·자동차·화학·조선 등의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고,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기술력을 모두 겸비한 몇 안 되는 나라다. 그만큼 우리나라만의 강점이 있다. 현재 산업계 상황을 보면 전혀 기반이 없던 분야에서 갑자기 AI를 적용해 크게 성장하긴 어렵고, 기존에 잘하던 분야에서 AI를 통해 기술 우위를 점하는 추세인 것 같다. 결국, 우리도 경쟁 우위를 점하고 있는 분야에서 AI 특화 기술을 적용해 한 단계 더 점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챗GPT 분야 기술력 격차는 어느 정도인가.
“대규모언어모델(LLM)을 써서 학습한 모델을 갖고 만든 게 챗GPT다. 요즘 우리 기업들도 챗GPT 관련 기술을 많이 확보하고 있는데 문제는 역시 데이터 차이다. 가령 어떤 아이는 집에 책이 100권 있고, 어떤 아이는 책이 1만 권 있다면 누가 더 다양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겠나. 챗GPT의 기술력이 향상되려면 그만큼 데이터도 많아야 한다. 이로 인해 ‘(데이터를 많이 가진) 부자가 더 부자가 될 수밖에 없다’거나 ‘데이터를 가진 자가 미래를 지배할 것’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단기간 데이터를 확보하는 게 가능한가.
“그게 어렵기 때문에 지금부터라도 잘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론 모든 걸 다 만드는 종합회사가 있다면, 일부 제품에 특화한 더 작은 규모의 회사도 필요하다. 백화점 대신 특화 소매상 정도의 영역을 한국이 개척한다면 좋은 시장이 될 것이다. 과거 광고 중에 ‘한국은 산유국입니다’라는 문구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문구는 AI 분야에도 적용될 수 있다. 우리가 산유국에서 원유를 받아 뛰어난 정제 기술로 최고 품질의 휘발유를 만드는 것처럼, 자체 보유한 데이터는 적더라도 어마어마하게 쌓여 있는 데이터에서 유의미한 정보를 꺼내는 기술을 잘 발전시키면 규모의 경쟁에서 벗어나 우리가 잘할 수 있는 분야를 만들 수 있다고 본다. 특화한 경쟁력을 갖추면 우리나라의 LLM도 전 세계에 수출할 정도의 기술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AI 기술 발전으로 부작용은 없나.
“이미 딥페이크 등 AI로 인한 부작용이 나오고 있다. 항상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안 좋은 곳에 먼저 쓰이기 마련이다. 이로 인해 업계에서는 딥러닝에 따른 AI 기술의 발전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앞으로 영화 ‘터미네이터’와 같은 세상이 도래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AI 기술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시킬 방안은.
“개인적으로 강의를 할 때 가장 마지막 슬라이드에는 자동차 페달 2개를 보여준다. 하나는 가속 페달이고, 하나는 브레이크 페달이다. 수강생들에게 보통 가장 좋은 차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빨리 달리는 차’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빠르게 달리다가도 필요할 때 잘 멈춰주는 차’라고 말한다. 내 생명을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는 차가 가장 좋은 차라는 뜻이다. AI 기술도 가속 페달만 밟으며 발전시키기보단 브레이크 페달 기술도 반드시 함께 개발해야 한다. 국가 간 기술 경쟁 등으로 인해 가속 페달만 밟다 보면 언젠가는 AI가 지구온난화나 핵을 능가하는 위협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전 세계가 머리를 맞대고 힘을 모아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AI가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란 우려도 있다.
“1·2·3차 산업혁명 때도 똑같은 우려가 제기됐지만, 결과적으로는 큰 영향이 없었다. 오히려 산업혁명을 거치며 인구는 더 늘었고, 최근에도 AI가 단순 업무 등을 대신해주면서 대기업 사이에서는 주 4.5일제와 같은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물론 AI 등장으로 인해 사라지는 직업군이 생기겠지만, 또 한편에서는 새로운 직업군이 등장할 것이다.”
―올해는 AI 분야에 있어 어떤 해가 될 것으로 전망하나.
“한마디로 ‘퀀텀 점프’의 해가 될 것이다. 지난해 챗GPT 경쟁이 촉발되며 글로벌 기업들이 생성형 AI 툴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생성형 AI 등장의 전과 후는 완전히 다르다. 과거에는 AI가 강아지인지 고양이인지, 기계가 고장인지 아닌지, 이게 불량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만 했다. 하지만 생성형 AI는 인간의 창의적인 영역에까지 도전하면서 판도가 또 한 번 달라졌다.”
―AI의 발전 속도는 더 빨라질 것으로 보나.
“2016년 알파고의 등장은 AI가 발전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당시 전 세계인이 알파고를 보며 AI가 중요하다는 걸 처음 인식했고, 그 이후 놀라운 속도로 발전해왔다. 지난해에는 챗GPT라는 전 세계인이 모두 아는 혁신적인 제품이 나왔다. 이번에는 AI가 창의성에도 도전하면서 다시 한 번 돈과 인재들이 AI 분야로 몰려들고 있다. 글로벌 대기업들도 이제는 AI 산업에 대부분 뛰어들었기 때문에 앞으로 AI 산업의 발전 속도는 우리가 예상했던 수준을 뛰어넘을 수 있다. 막대한 돈이 투자되면 단 1∼2년 새 엄청난 차이가 생긴다. 만약 양자 컴퓨터까지 나온다면 발전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다. 아이가 기다가 걷다가 뛰는 수준으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올해 말이나 내년이 되면 그동안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획기적인 기술이 나올 수도 있다.”
출처: 이근홍 기자 문화일보(https://munhwa.com/news/view.html?no=2024051701032307220001)